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운급 경순양함 (문단 편집) === 글로스터급 === *1번함 '''HMS 글로스터''' (HMS Gloucester) 1번함 글로스터는 이 이름을 가진 9번째 함 즉 9대째 글로스터이다. 글로스터는 진수후 테스트때부터 조금 남달랐는데 최고 속도 측정당시 31.92노트(59.12km/h, 36.73mph)를 기록 타운급의 평균 속도였던 33.05 노트(61.21km/h, 38.03mph)에 미치지 못하며 타운급중 가장 느렸다. [* 하지만 이는 얕은 해역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이는 충분한 양에 밀어나질 물이 없어서 그랬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1939년 1월 31일완공으로 재대로된 함선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 진수는 37년 10월 19일이다.] 배치와 바로 중국해역에 제 4 순양 함대에 기함이 된다. 39년 11월 중순 글로스터와 프랑스 해군에 아비소 리가울트 드 제노일리와 함깨 독일의 중순 [[도이칠란트급 장갑함|그라프 쉬페]]를 추격했으나 실패하고 마다가스카르와 셰이셜 제도 사이에 인도양에 배치된다. 1940년 5월 글로스터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지중해의 제 7 크루저 함대에 소속된다. 리버풀이 토브루크를 포격할때 글로스터는 기뢰제거선을 침몰시킨다. 7월 7일 지중해에서서 몰타 호송대를 보호하기 위해 파견되었으나 [[사보이아-마르게티 SM.79]]의 폭격으로 수평장갑이 관통 기동에 어려움이 발생했고 함내 함장을 포함한 고위직 참모들이 사망한다. 그럼에도 글로스터는 7월 9일 칼라브리아 전투에 참전 항모 이글을 호위하였고 8월이 되어서야 수리가 진행되었다. 9월 글로스터는 제 3 순양함대에 배속되었으며 모자작전에서 리버풀과 함깨 1200명 규모의 병력을 몰타로 이동시킨다. 그후 11월 11일 타란토 전투에서 일러스트리어스를 호위한다. 41년 1월 11일 글로스터는 자매함 사우스햄튼과 초과작전에 참여 몰타로 떠났으나 루프트바페의 Ju-87 슈튜카의 공격으로 550lb(550파운드, 약 250kg 폭탄이 5개의 수평장갑을 관통뒤 폭발하지 않았지만 사우스햄튼은 큰피해를 입고 오리온에 의해 뇌격 자침한다. 41년 3월 27일 글로스터는 다시 제 7 크루저 함대에 소속되었고 마타판 케이프 해전을 치룬다. 4월 20밤 글로스터는 트리폴리 항구를 포격했고 월말 지브롤터에 위치했다. 5월 초 글로스터는 타이거 작전을 위해 지중해에 주둔한다. 독일의 크레타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어러 군으로 나뉘어진 상태에서 독일 상선파괴를 목표로 독립적으로 행동했으며 독일의 낙하산 부대가 크레타에 착륙하자 글로스터는 포스B의 지휘함이된다. 글로스터는 키티라 해협에 주둔하는 동안 피지에서 14마일 (23km)떨이진곳에서 [[Ju-87|슈튜카]]의 공격을 받고 본함대에 귀환하려 했으나 침몰했다. 1년도 되지 않아서 5번의 전투 명예 훈장을 받아 파이팅 G 라는 별명이 있었다. *2번함 '''HMS 맨체스터''' (HMS Manchester) 1939년 11월 맨체스터가 주해역에 배치되었을때 데가우징 장비를 장비 했고 높은 관제탑을 가졌다. 40년 11월 맨체스터는 레이더를 장비 2번포탑의 위에 다른 대공포를 장비했다. 39년 9월 3일 나치독일이 전쟁을 선포했을때 맨체스터는 홍해와 아덴만을 순항중이였고 9월 25일 인도양으로 향하는 군대를 호위했다. 11월 10 맨체스터는 영국해역으로 복귀하여 제 18 순양 함대에 소속된다. 11월 25일 맨체스터는 폭풍등의 피해 복구를 위해 조선소에 도크에 들어갔다. 12월 22일이 되어서야 맨체스터는 수리및 개장이 끝나게 된다. 다시 주해역으로 돌아와 북부순찰대에서 활동하며 독일 봉쇄 임무를 진행한다. 40년 3월 16일 독일 항공기가 공격했으나 피해는 전무했다. 제 18순양 함대에서 제외된후 노르웨이로 향하는 호송대 호위를 하게된다. 4월 7일 맨체스터는 사우스햄튼과 방공순양함 캘커타와 예하 구축함 4대는 노르웨이로 향하는 43척규모의 호송대를 호위했으며 이후 독일 해군 함정이 발견되자 발각되지 않도록 주해역으로 복귀했다. 맨체스터는 자매인 셰필드와 글래스고및 제 4 구축함대의 예하 7척의 구축함과 함깨 4월 9일 아침 베르겐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급 순양함을 공격할것을 지시받는다. 그날밤 맨체스터와 사우스햄튼, 제 6 구축함대는 독일군의 재보급을 저지한다. 5월 초 맨체스터는 독일공군 소속의 항공기에게 공격을 받았으며 경미한 피해를 입는다. 5월 10일 맨체스터는 셰필드와 함깨 독일 잠수함에 의한 공격을 받았고 수리를 위해 예인된다. 5월 26일 간단한 수리를 마친후에 버밍험과 셰필드와 함깨 제 18 크루즈 함대 소속으로 침략 방지 임무를 수행한다. 11월 맨체스터는 이탈리아 함대와 교전했으며 41년 1월 8일 기함을 에든버러로 교체하고 지중해를 빠져나와서 1월 11일부터 4월 17일까지 수리를 하게 된다. 7월 말 이탈리아의 공중공습에서 맨체스터는 어뢰를 맞고 폭발했고 포탑하나가 대파되고 선체에 60피트(18.3m)의 길이의 구멍이 생기게 된다. 9월 15일 맨채스터는 완전수리를 위해 팬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수리를 시작 42년 2월 27일 수리가 끝났다. 페데스탈 작전에서 맨체스터는 제 10 쿠르즈 함대로써 항모 퓨리어스를 호위했으나 맨체스터는 독일의 어뢰정에 의해 기동에 어려움이 생긴다. 이후 침수로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복원력을 잃기 시작하자 배를 포기했고 배는 침몰했다. *3번함 '''HMS 리버풀'''(HMS Liverpool) 리버풀은 대전발생전 지중해에서 2달간 머무르며 엔진의 문제를 해결했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리버풀은 제 4 순양함대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39년 11월 중국해역의 제 5 순양함대로 자리를 옴기게 된다. 1940년 1월 21일 리버풀은 일본의 여객선 아사마 마루를 나포했다. 40년 4월 리버풀은 호주 순양함 HMAS 호바트와 함깨 홍해에 함대를 이루었고 리버풀은 홍해 함대의 기함이 된다. 41년 6월 리버풀은제 7 순양함대로 편성되었고 이탈리아의 공습을 막을 수 있는 9척의 순양함중 하나가 되었다. 6월 12일 리버풀은 글로스터와 예하 4척의 구축함들로 이탈리아 해군과 조우한다. 장갑순양함 산 조르지오가 포함된 5척의 선박을 공격했고 조반니 베르타를 침몰시킨다. 7월 9일 함대는 지중해에서 이탈리아 함대와 조우하였고 이후 공격을 진행하였고 전함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워스파이트]]가 23km 밖에서 [[콘테 디 카보우르급 전함|줄리오 체사레]]를 명중시킨다. 7월 말 리버풀은 이집트로 향하는 호송호위를 진행 도중 이탈리아 공군의 공격을 받았고 두개의 폭탄이 폭발하지 않은 채로 갑판을 통과하는등 당시 유일한 피해를 받은 함이였다. 8월 다시 지중해 함대에 편성되었고 리버풀은 중순양함 켄트와 함께 제 3 순양함 함대에 소속된다. 9월 28일 리버풀은 몰타로 호송을 진행한다. 10월 14일 리버풀은 이탈리아 소속 뇌격기에 의해 공격을 받았으며 연료탱크가 폭발 연료누출이 발생 후에 폭발로 함선용골에 심각한 피로를 주었고 포탑 하나가 폭발해 버린다. 리버풀은 임시수리를 진행했고 이후에 아일랜드 해군조선소에서 완전수리를 위해 미국으로 이동된다. 이후 개량으로 리버풀윽 레이더장비를 가졌으며 대공화기도 증강되었다. 수리를 마치고 제 18 크루저 함대서 포함 호송호위 임무중 악천후와 루프트바페의 공격으로 순양함 트리니나드가 손상 리버풀이 이를 대처한다. 5월 리버풀은 영국으로 돌아오는길에 러시아에서 수리를 받는다. 5월 25일 리버풀은 소련을 지원하기 위한 호송대 35척의 규모를 순양함 나이지리아, 노포크, 켄트 예하 수많은 구축함과 잠수함이 호위를 한다. 리버풀은 작살작전에서 항공모함 호위중 어뢰를 맞았는데 하필 그부분이 엔진실이여서 침수가 발생 우축 샤프트 2개가 멈춘다. 속도가 4노트로 줄어버렸고 6월 17일 수리를 위해 지브롤터로 향하던중 또 공습을 받게된다. 8월 임시수리를 마친 리버풀이였지만 운영인원을 배정받지 못하고 43년 부터 45년까지 유지보수만 진행하였다. 45년 10월 리버풀은 다시 일선에 복귀하면서 제 15 순양함대에서 활동한다. 1952년 리버풀은 포츠머스조선소에서 예비군으로 보관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버풀은 벨파스트와 함깨 현대화 개장 계획에의해 목록에 올라갔다. 그러나 1957년 군축의 연다른 실시로 최소 551척을 폐기한 영국해군은 60연대에는 전시순양함 계획을 철수할것임을 밝히면서 이후 리버풀은 [[카운티급]]과 [[타이거급 경순양함|타이거급]]에게 대채 1958면 매각 스크랩처리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